하얀 쌀밥이 부의 상징이이었던 배고픈 보릿고개시절에는 리어카 끄는 아저씨가 커다란 소쿠리에 인심 좋게 담아 주던 감자나 고구마를 쪄서 소금이나 설탕에 찍어 먹으며 끼니를 대신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렇게 값이 쌌던 감자나 고구마가 이제는 녹말이 주성분이고 많은 필수 단백질및 비타민 c 를 포함하는알칼리성 식품이며 다이어트와 미용의 웰빙 식품이라고 선전되면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선구자 | ||||||||||||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거리 어디에든 액자만 걸면 한 폭의 회화가 되는 도시였다. 반듯반듯 네모진 바로크 양식 건축물 외관에 곡선 장식을 많이 넣고, 노란색 계통을 입혀 온화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난달 말 필자가 찾았을 땐 핀란드만(灣)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도시를 울긋불긋 채색하고 있던 단풍이 절반은 지고 없었다. 대신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러시아 소녀의 눈망울처럼 맑고 푸른 초겨울 하늘만 서늘하게 틔어 있었다.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열혈남아 표트르 대제가 1703년에 건설한 도시다. 표트르는 원래 왕위 계승권자가 아니었다. 선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사망하자 병약한 이복형 이반과 함께 열 살 때 공동 차르(황제)가 된다. 그러나 이복누이가 어린 두 황제를 대신해 섭정하면서 표트르는 어머니와 함께 모스크바 교외 별궁으로 쫓겨난다. 그곳에서 그는 병정놀이와 말 편자 박는 일, 목공 일, 대포 주조하는 일을 배우고 외국인들과 사귀며 바깥 세계의 문물을 경험한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변방의 후진국이었다. 후일 권력을 되찾아 왕 구실을 하게 된 그는 1697년부터 1년5개월간 서유럽에 250명의 사절단을 파견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신분을 감추고 가명을 써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긴 여행에서 그는 유럽 선진문명을 흠뻑 빨아들였다. 네덜란드에선 조선기술과 항해술을 배웠고, 프로이센에서는 하사관으로 가장해 포술을 습득했다. 과학, 축성, 의학, 군사, 천문학 등 닥치는 대로 실용학문과 기술을 익혔다. 물품과 무기를 잔뜩 사 모은 그는 900명이 넘는 외국인 군사전문가와 과학기술자를 이끌고 귀국한다. 그리곤 그들 지식을 자국 국민에게 쏟아놓도록 했다. 이는 개화기 일본 정부가 당시 재정수입 중 2%를 써가며 100명의 사절단을 근 2년간 구미 12개국에 파견해 선진문물을 견학케 한 것에 비견된다. 표트르는 귀국하자마자 서구화 개혁에 착수했다. 귀족의 긴 수염을 자르게 하고 문자를 개혁했다. 국영공장을 설립하고 산업육성 정책을 폈다. 무엇보다 스웨덴 터키와 싸우면서 폐쇄된 러시아가 유럽으로 나아가는 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해군의 창설과 강화, 바다를 낀 새 수도 건설로 이어졌다. 핀란드만에 면해 있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모스크바 주위의 권신들과 황실의 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그는 천도를 결정했다. 선구자의 행적이 중요한 건 뒷사람이 그 정신과 그 지향하는 바를 본받아 계승한다는 점이다. 백범 김구가 눈길을 걸을 때는 뒤따라오는 사람을 생각해서 발자국을 조심해서 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취지다. 여러 나라로 둘러싸인 러시아는 해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네 곳밖에 없다. 발트해 흑해 카스피해 극동항이 그것이다. 러시아 후손들은 나중에 이 네 곳 모두를 뚫어 바다로 나가는 길을 확보했다. 그가 당시로서는 미치광이로 불릴만치 무모한 일들을 해낸 배경에는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실력 위주로 사람을 쓰는 인사 스타일이 있었다. 훗날 총리까지 오른 멘시코프는 우크라이나 마부의 아들이고, 둘째 왕비 예카테리나는 맨시코프 총리의 하인이었다. 온갖 연(緣)으로 칭칭 감긴 한국축구를 쾌도난마해서 세계 4강으로 끌어올린 히딩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표트르는 53세 때 사망했다. 항해하던 중 옆에 따르던 배가 뒤집혀 신하가 물에 빠지자 뛰어들어 구한 뒤 자신은 폐렴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러시아를 서구 열강의 대열에 올린 큰 스케일의 사나이, 그러면서 신하의 이빨을 마취를 해 뽑아주기도 했던 자상한 열혈남아 표트르는 그렇게 죽었다. 그가 핀란드만을 향해 뒷짐을 진 채 흠흠, 해조음을 들으면서 바다에의 동경, 해양강국에의 꿈을 키웠을 그 자리에 필자도 서봤다. 그가 서서 바라보았을 바다를 향해 선 채 드넓은 만주 벌판 어딘가를 말 타고 달렸을 그 옛날 선구자의 모습을 그려봤다. 우리는 왜 표트르 같은 미치광이를 갖지 못했을까. 종양이라 비관 말고 양성이라 방심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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