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그곳에 가다
30년전 내가 근무한 부대를 다녀와서....
오래전 부터 이곳에 가고 싶었다
누구와 술먹어면서나 친구들과 잡담을 나눌때면 어레이 나오는 군대이야기
항상 마음속에 그 곳이 그리워지며 어떻게 변화되어 되어 있을까
생각을 해왔다
제대 할 때 뒤도 안돌아 보고 나온다고 말하곤 하였던 군대생활....
군부대를 향해서 오줌도 안 쏜다고......
입대한지 30년만이다 1978년 8월에 논산훈련소에 입소...자대배치를 이곳에
지낸지가 벌써 ......그렇게 오래되어 버렸네요
언제 갈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고, 친구처럼 지내는 군 바로위 고참인 최병장은 서울에 살고 있어 한번 가자고 꼬들겨도 그곳을 그냥 지나왔다고 별 생각 없단다... 같이 한번 더 가면 안되나. 마음에 0도 안들어....
누워있어면 고참대우해주나 고참 대우 받으려면 적극 노력 해야지
어제 고향친구와 저녁을 먹고 원룸에 돌아오니 모든 할일도 못하겠다
금요일 주말이라서 인지 잠도 안오고 ... 차라리 부산에 내려갈 것....
동기모임도 하는데 ...후회하지만......
그래 내일 아무 생각 없이 평소 가고 싶어 했던 그곳에 가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항상 5시면 일어나지만 오늘은 6시에 일어나 배낭에 우산과 책1권, 신문
수첩, 지갑등 간단하게 꾸러미를 만들었다.
사당역에서 4호선으로 출발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1시간 30분이 소요된 소요산역에서 내렸다 출구에 나오자 바로 보이는 것이 옛날에 많이 보았던 기념탑이다.
소요산의 기억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벨기에. 네덜랜드 참전용사
기념탑을 만날 수가 있어서다
수없이 보아왔던 곳이다 눈으로 많이 ?혀져 있어 오래된 친구처럼 정말 반가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탄강다리를 지나 먼저 가고 싶었던 전곡읍 그곳에 도착된것은 9시 조금 넘어서 였나..
한탄강은 무덥고 땀 뻘뻘 흘리면서 군용트럭에 짐짝처럼 타고 훈련받으려 오가거나 작업하면서 오갈때 한탄강유원지에서 남여들이 즐겨 노니는 모습 보고 군발이의 모습은 어떠하였겠는가? 하여튼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 선하게 남아 있는 영상을 떠 올리면서
한탄강 다리를 하나 더 놓여져 있어 한쪽만 눈여겨 볼 수있었고 반대편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때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 입은 것을 TV를 통해 본적이 있어 안타까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눈에 TV가 확 보이더군
한탄강 기차길은 제대무렵 예비군복 입고 동기들과 외출나와 잠시 보내면서 사진도 찍고 하였던 곳이 눈에 쏙 들어 온다. 고 옆에 포병사단 53...부대도 살짝 보였다
전곡 건너기 전 철교를 타고 ...영화 오! 수정에 나오는 모습처럼하고...
전곡 3년동안 무척 많이 들락거렸던 곳 ...28사단으로 공무차 다니고, 휴가.. 외출, 훈련나갈 시 항상 지나가는 그곳 전곡....당시 우리들에게 평소 이곳 진출도 쉬운곳이 아니었다 군인은 어떻게 하던 조금이라도 부대 밖을 나가고 싶어한다 진상리 00부락 다음이 전곡이다
부대찌개, 순대, 됫베이 소주, 젊은 여성이 우글우글거리는 사창가지역...
시내 윤곽은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버스터미널은 약간 확장된 그모습이고 ,현재 택시 주차장은 그모습이다 ,
그 옆 솔다방과 돌체다방은 없어졌지만 흔적은 건물이 남아 있었다
솔다방은 그당시 솔 담배 (글자와 솔모습마크)를 그대로 도용한 것이다
솔노래방이 옆 건물에 있지만 그 장소는 아니란다. 돌체다방 요즘 7080노래를 많이 들려주곤 했던 제법 넓다란 다방이었다 크리스마스때 트리와 솜으로 창문에 붙여 분위기를 자아내게 해던 ............아! 옛날이여......
용사의집이라는 곳이 많다 역시 이곳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 상당이 많다 터미널 건너편 새서울슈퍼 여주인(박계순)은 이곳에 오래
살아서 인지 흘러간 전곡의 지난 세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자기가 지금 장사하는 이곳이 약국이었고 옆건물이 당시 많은 사람이 찾았다는 무궁화 다방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도 군인들이 외출을 많이 하는데 요즘은 외출이 의정부까지 가능하다고한다 당시는 위수지역이 전곡이었다 군인을 감시하는 헌병도 많았고 도망다니고 한때도 많았다 휴가증이나 외출증 없이 나왔다가 헌병한테 들켜 고생많이한 동료들도 있다
아침은 전곡시내 주변을 한번 둘러 보고 새로 현대식으로 개장 오래되지 않았다는 전곡시장에 들어 가니 음식이란 것이 그의 대부분이 부대찌게 돼지국밥....그런 종류들만 있다 사실 나는 그시절의 생각하면서 서울집에서 밥을 안먹고 나왔다
내가 가고자 하는 8205부대는 00면 00리 당시 자갈로된 비포장도로
겨울에 눈이 오면 눈치우는일이 일과였고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가는 버스는 1시간마다 출발하는데 10시20분에 출발 20분후에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리라고 해서 내린곳이다. “신고합니다 이병 김00은 포병 제977 대대(본부포대)전입을 신고합니다 충성”하였던 곳.....1978년 9월
30년이 지난 그곳 똑 같은 모습의 위병소까지 100M ... 걸어서
정문에는 “무적왕포.....광명부대”라는 간판글들로 적혀있다.
그때는 무시무시한 구호 “초전박살”, “때려잡자 김일성”
위병소에 신고하고 들어가고 싶어서 이야기를 해서 ...........................
위병소 근무하는 병장은 서울 노원구에서 왔다느데 대학 1년 마치고 ..
내가 제대무렵을 이야기하니 “저는요 그때는 태어 나지도 않았습니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약간 당시보다 작아보이는 연병장(실제는 변한데가 없는데)
내가 관심이 많았던 산돌교회는 그대로 있었지만 그옆 아름다운 연못이 태풍으로 살아져버렸단다. 연못속 동산도 있었는데...
입구 관사는 변형된 모습으로 그대로 있고, 법당이 연병장위에 새로 지어져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인사과와 의무대는 옮겼는 모양이다 그곳에 통신대가 있는 것 같은데 약간 멀리서 보아 잘 모르겟다
결국 들어가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알았다고 준비안하고온 내 잘 못이지...아쉽지만 조그만 흔적이라도 있는
진상리와 임진강 화이트교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30여분 걸어가면서 짜쯩이 나기 시작한다
상황장교에게 내가 이곳에 오기 어려운곳인데 충분히 설득하여 보고 가야겠다라고 왜 이야기글 못했는지에 대한 나에 대한 성찰이 하다보니...
그기에 날씨가 금년들어 최고 찌는 것 같다
가는 도로변에 낙석이 그대로 있고 멀리서만 보았던 멋있게 만들어진
화이트교는 98년 태풍에 살아져버려 조금 아래 새롭게 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진상리 동네의 전체적인 윤곽은 어렴프시 기억나지만 우리가 모셨고 처음 사제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던 인사과장 신상철대위 집이 있었던 곳은 확실히 모르겠다
혼자와서 보니 아쉽기도 하다
2008. 7. 7